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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올빼미, 아들과 권력을 나누고 싶지 않았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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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가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鮮血)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藥物)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인조실록)


실록에서 인조가 직접 아들 소현세자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병자호란으로 청의 볼모가 되어 끌려간 아들 소현세자가 8년만에 청의 호의적인 기세를 업고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 청과 조선의 꼬인 관계의 실타래가 풀릴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귀국 2달만에 학질에 걸려 사망했는데, 이목구비 7개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왔다는 이야기가 독살되었다는 무성한 소문을 만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광기의 임금 인조와 소현세자 그리고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이자 주맹증을 가진 침술사의 이야기가 곁들여진 영화가 <올빼미>다. 

(영화 <올빼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

인조는 명나라와 친하게 지내면서 청나라와 국교를 단절한다. 이에 청나라 태종은 1636년 12월 9일 1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직접 조선을 침략한다. 이것이 '병자호란'이다.
청나라 군사를 피해 남한산성에 45동안 머물며 저항했던 인조는 결국 청나라 군대가 머물던 삼전도 나루터에서 강화 협정을 맺게 된다. 

이때의 기록이 인조실록에 남아있다. 

남한산성을 나온 인조는 왕이 입는 곤룡포 대산 쪽빛 평민복을 입고 맨발로 삼전도에 있는 청나라 황제의 막사까지 걸어간다. 
그리고 나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상복을 입고 3번 큰절을 하고 9번 땅바닥에 머리를 꽝꽝 박아, 절하는 소리가 단 위에 앉아 있는 청 태종의  귀에 들리도록 하는 청의 인사 방식)의 예를 갖추고 항복한다. 

'파이다(faida, 정렬하라, 排列)'라는 명령에 자리를 잡고 선다. '냐쿼라(niyakvra, 꿇어앉아라, 跪)'라는 명령을 듣고 무릎을 꿇는다. '헝킬러(henkile, 조아려라, 叩頭)'라는 명령에 양손을 바닥에 두고, 머리를 세 번 조아린다.[6] '일리(ili, 일어나라, 起)'[7]라는 명령에 무릎을 펴고 일어난다.[8] 여기까지가 한 세트. 이것을 3번 반복한다. 즉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다.

 

청 황제의 총애를 받는 소현세자, 권력에 위협을 느낀 인조
청의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의 소식은 조선에 계속 전해졌다. 청황제의 총애를 받는 다는 소식은 인조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광해를 몰아내고 반적으로 임금이 된 인조. 삼전도 굴욕으로 백성의 비웃음거리가 된 왕이었던 그는 8년의 볼모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아들 소현세자가 마냥 반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종 신료들은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돌아온것 만으로도 청과의 관계가 호전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정장 인조는 아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에서 마중조차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청나라를 벗으로 삼고 신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소현세자의 말에 인조는 명나라를 따라 자신의 정통성을 지키고자 한다. 특히 삼전도의 굴욕적인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를 잊었나면 소현세자를 질책한다. 


세자의 죽음, 유일한 목격자는 맹인 침술사
눈이 보이지 않아 다른 감각이 발달해 그 감각을 바탕으로 환자의 질환을 추론하고 침을 놓을 수 있었던 경수. 실력도 제법 좋았고, 운이 좋게 어의의 눈에 띄어 궁으로 들어간다. 경수에겐 비밀이 하나 있었다. 불이 꺼진 어두운 밤에는 올빼미처럼 낮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볼수 있는 주맹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소현세자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어의와 함께 소현세자의 처소를 찾은 경수는 어의가 독침으로 세자를 족이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 <올빼미>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한 팩션이다. 실제 역사 속에서 그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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