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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적 글쓰기 - 노력해야 잘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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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논문을 써야 하는 학생에게는 미래이고, 내일 아침 기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김과장에겐 밥벌이다. 

피 끓는 청춘에게는 연애이 방법이며, 누군가에겐 지친 삶을 위로하는 마음의 위안이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타인을 향한 연민이자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이다.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했다. 글쓰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지만 서른이 넘어서야 비로소 실천으로 옮긴 지삭생이다. 늑제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서론이후부터 10년 넘게 하루 두 편씩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책도 남부럽지 않게 많이 읽었다. 그리고 소중한 결실을 하나 맺었다. 2009년부터 쓰기 시작한 <경향신문> 칼럼이 다행히도 대중에게 호평을 받은 것이다. 그 인정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글쓰기는 아주 조금씩 좋아졌다. 더불어 어린 시절 그늘진 생각들은 글쓰기의 좋은 소재로 바뀌어갔다. 글쓰기가 삶을 바꿀 수도 있다. 

어린시절 못생긴 외모와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말수도 적었다는 서민 교수.

공부라도 잘해야 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에 들어갈 수 있었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표출할 방법이 없어 글쓰기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렇게 글쓰기는 절실했던 그였기에 지금처럼 글쓰기를 주제로 책을 낼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서민적 글쓰기라고 해서 아주 특별한 것은 없는것 같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을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구양수가 말했던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는 말을 떠올릴 것이다. 서민 교수가 말하는 글쓰는 방법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천년전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구양수의 말이 오늘날도 여전히 글쓰기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생각되고 있다. 다만 서민 교수의 경우 절실함이 있었고, 늦게 나마 실천을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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