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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박열 - 일본 제국을 뒤흔든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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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내각은 민란의 조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계엄령을 선포한다.

이를 계기로 무고한 조선인 6천여 명이 학살 당하는 이른바 간토대학살이 벌어지게 되는데, 국제사회의 비난이 두려웠던 일본은 사건을 은폐하기에 적합한 인물로 불령사를 만들어 활동했던 대표적 불령선인 ‘박열’을 지목하게 된다.

불령사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1923년 4월경 한인 14명과 일본인 5명 등을 규합해 만든 항일운동 단체. 일본 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대중지향적 항일 운동을 전개한 단체라 할 수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은 이 단체를 폭동을 계획한 비밀결사로 몰아가려 했다.

불령선인(不逞鮮人)은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으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한국 사람을 이르던 말이다.

일본 정부는 1926년 3월, 박열과 가네코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1주일 만에 특별 감형시킨다고 발표했다.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박열은 독립운동 역사상 최장 기간인 22년이 넘는 옥살이를 해야 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도 대역 사범이라는 이유로 석방되지 못하다가, 그해 10월 27일 44세의 중년이 되어 석방됐다.

영화를 보고나면 박열의 사상적 동반자이자 연이이었던 후미코 또한 강한 인상을 남김다.

후미코는 일본의 천황제에 저항하는 아나키스트였다.
그녀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믿었고, 권력의 대표자인 천황과 황태자는 이러한 평등을 해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후미코는 1926년 7월 23일 형무소에서 자살했다. 감형을 통해 국가권력이 부여한 삶을 거부하고 국가에 굴복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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