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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황제(김희선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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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황제
김희선 소설 『라면의 황제』. 확신할 수 없는 일들과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픽션들. 이 소설집이 내재한 힘은 그러한 예언의 불가능성과 잔인하리만치 현실적인 픽션의 힘에서 비롯된다. 소설이 가진 힘을 믿는 자에게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구원이 있으리. 만약 우리에게 ‘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가 유의미하다면, 이러한 단언은 다름 아닌 ‘현실-없는-현실’이라는 텅 빈 공간들, 즉 작품 속의 ‘W시’로 상징되는 장소에서 전혀 다른 의미 해석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저자
김희선
출판
자음과모음
출판일
2014.12.29

 

 

 

 

 

 

 

‘라면의 황제’라는 책 제목을 보고 라면에 대한 책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크게 빗나갔다. 

 

‘라면의 황제’는 라면, 카펫과 같은 일상적인 소재를 역사적 사건 또는 사회적 문제로 엮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표제작인 ‘라면의 환제’는 라면이 사리진 미래를 이야기한다. 죄와 타락의 이미지로 전략한 라면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라면의 얼큰한 국물맛을 잊지 못하는 라면 애호가들과 , 라면 외에는 먹을 것이 없는 일부 청소년과 독거노인들이 라면 유해론에 반대하는 모임을 결성했고, 라면동회회가 만들어진다. 라면동호회는 자신들의 유대감과 투쟁정신을 결속시켜줄 전설적이고 영웅적인 인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27년간 라면만 먹은 김기수를 발굴해 내고, 김기수가 왜 그처럼 라면을 먹게 됐는지 추적한다.

 

 

 

한 천재의 발자취를 추적하면서 ‘국민교육헌장’이 나타나게 된 배경을 그린 ‘교육의 탄생’은 조금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지금은 초등학교지만, 당시 국민학교에 다녔던 나는 국민교육헌장을 꼭 외워야만 했다. 그래서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전문은 아니지만 일부는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소설에서 아이큐 215 천재로 인정 받은 최두식은 마국항공우주구에 파견돼 우주선의 궤도에 관한 미적분문제를 풀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곳에서 우주공간에서 인간의 무의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연구한 러시아 출신 과학자 레오니드 몰로디노프 박사를 만난다. 그는 일종의 ‘진언(眞言)’을 통해서 조종사들이 우주에서 겪게되는 불안 문제를 해결했다. 모로디노프 박사의 지식을 전수받은 최두식은 한국의 비밀요원에게 그 내용을 전하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국내 연구진들은 ‘국민교육헌장’을 만든다.

몰로디노프 박사는 “진언은 어떤 특수한 파동을 지니는 소리들의 조합”이라며 “진언이 일으키는 파동은 그걸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의 뇌에 어떤 변화를 일으켜서 세뇌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고 한다.

 

‘페르시아 양탄자 흥망사’는 아버지처럼 세탁소를 운영하는 세 아들 중 막내아들이 세탁소에 오래전부터 보관되어 있던 페르시아 양탄자와 관련되 스토리를 <이제는 말할 수 밖에>라는 프로그램에서 제보하면서 시작된다.

촬영팀은 카페트의 진품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란까지 취재를 간다. 

그런데 카페트와 관련된 스토리는 군사정권에서 민주 정부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 IMF 등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2098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창립 210주년 기념 다큐인 <우주의 끝-생명의 비밀에 다가서다> 촬영 현장을 통해 인간복제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에드워드 김이라는 한국인 과학자는 사람이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재배열하는 과정을 통해 그 부모를 만들어내는 역복제를 연구했다. 그러던 중 배아에서 첫 번째 세포가 분열할 때, 죽음을 유발하는 유전자도 동시에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 유전자를 억제하는 법을 찾아내 인류는 영생을 얻게 되었다. 영생을 얻는 인류는 더 이상 번식에 대한 욕구를 잃어버리게 된다. 

에드워드 김은 자신이 태어날 때 어머니가 급성색전증으로 숨을 거두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얼굴을 본적이 없다. 그래서 그렇게 연구에 매진했던 것이다. 

그렇게 지구는 아무도 살지 않는 죽은 행성이 되버렸다. 

외계인 비행접시의 출현으로 인한 W시에서 일어나는 유언비어와 사람들의 반응을 다루고 있는 ‘지상 최대의 쇼’. 엄청난 사건도 일상이 되면서 무감각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W시가 외계인들이 거주할 공간을 주는 대신 외계인들이 시에서 일을하게 될거라는 유언비어에 사람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길까봐 반 외계인 시위를 하는 장면이 왠지 외국인 노동자들이 3D 직업군을 메우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씁했다. 

 

 

 

광우병을 소재로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해 범죄자의 길을 걷게 되는 청년의 모습을 그린 ‘개들이 사생활’. 불법체류자인 파키스탄 남성의 죽음의 음보를 통해 대립이 끊이지 않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어느 멋진날’, 유전자 변형식품, 식량주건을 다루고 있는 ‘경이로운 도시’,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있는 사실들이 언론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는지, 그리고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소설 ‘라면의 황제’는 이렇게 총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지은 문화평론가의 해설이 있지만 선입관이 생길 것 같아 읽지 않고 먼저 서평을 쓴다. 

 

조금은 황당무개한 설정과 상황을 일상의 소재나 역사적인 사건을 묘하게 뒤썪어 놓은듯판 느낌이다. 하지만 뭔가 신선하고 독특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9편의 단편이 모두 각각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엮여 있는 듯하기도 하다.

 

약사이기도 한 김희선 작가는 현재 병원에 근무하면서 틈틈이 작품을 창작한다고 한다. 김희선 작가의 위트넘치는 상상력과 촘촘한 구성이 돋보이는 ‘라면의 황제’를 읽고 나니 다름 작품이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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